소개 / 기획의 글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다만, 새로운 태양들이 있다.” – 옥타비아 E. 버틀러, 미출간 작 『트릭스터의 우화(Parable of the Trickster)』

《새로운 태양들》(2024/2025–)은 기존 문법 너머의 감각과 언어, 그리고 서로 다른 위치에서 발화되는 목소리들이 교차하는 장을 만들고, 그 안에서 예술, 교육, 사회를 함께 사유하고 실험하고자 시작된 배움 생태계이자 과정 중심의 공동체 예술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서로 다른 경험과 시선이 만나는 자리에서 배움이 단순한 정보의 교환을 넘어, 자신을 세우고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공동체로 확장되는 과정임을 전제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배움의 조건을 살피고, 그것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갑니다.

이 프로젝트는 매해 공동체를 모으고 매개하는 하나의 의제를 제안합니다. 2025년 ‘이동(mobility)’이 물리적 이동을 넘어, 이주, 자본, 데이터, 정체성의 변화까지 다양한 층위에서 이동의 조건과 그 불균형을 질문하며 관계의 지형을 탐색했다면, 2026년은 ‘앎(knowing/knowledge)’의 여정을 제안합니다.

여기서 앎은 지식을 축적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앎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신의 위치와 감각을 인식하며, 그것을 타자와 나누는 과정에서 형성됩니다. 이 과정이 개인을 넘어 공동의 활동이 될 때, 배움은 하나의 문화이자 운동을 조직하는 힘이 됩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배우는가가 아니라, 그 과정 속에서 어떻게 성찰하고, 어떻게 나누며, 어떻게 함께 확장해 나가는가입니다. 우리는 앎을 매개로 스스로를, 또 공동체를 조직할 수 있는 실천에 주목합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오늘날 교육과 예술 실천이 마주한 현실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제도적 교육 안에서 배움은 평가와 경쟁의 구조 속에서 제한되며, 이러한 구조는 학교를 넘어 예술 현장에서도 반복 혹은 재생산됩니다. 배움과 창작의 과정에서 형성되어야 할 개인의 언어와 감각은 종종 후순위로 밀려나고, 예술의 실천 또한 결과 중심의 생산으로 쉽게 환원되곤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조건 속에서 배움의 과정을 다시 중심에 놓고, 이를 개별적, 나아가 공동체적 차원에서 조직하는 것을 하나의 예술적 방법으로 바라봅니다. 예술은 단지 오브제로서 결과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사유하는 관계를 조직하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이때 배움은 단순한 지식의 습득이나 전달이 아닙니다. 『경계 넘기를 가르치기』의 저자 벨 훅스(bell hooks)가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의 프락시스(praxis, 실천의 확장된 개념)를 말한 것처럼, 성찰과 행위는 순환하며 서로를 갱신합니다. 우리는 이 과정을 관계와 인식을 재구성하는 수행적 사건으로 이해합니다. 교육과 배움, 그리고 예술은 분리된 영역이 아니라 서로를 변형시키는 운동입니다. 이때 사랑은 관계를 열고, 흥은 공동체의 에너지를 만들며, 유머는 긴장을 완화하고, 실천은 그것을 현실 속에서 지속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이 네 가지 요소는 배움이 살아 있는 공동체적 과정이 되도록 하는 조건입니다. 바로 이러한 조건 속에서 우리는 성찰과 행위가 순환하는 공동의 배움 생태계를 상상합니다.

새로운 태양들 2026 《앎의 여정: 사랑, 흥, 유머 실천》은 6명의 태양들(fellows)와 4명의 기획팀이 함께하는 캠프, 오픈 스튜디오, 오픈 아카이브 전시로 구성됩니다. 4일간의 캠프에서 펠로우들은 각자의 작업과 경험을 바탕으로 예술과 배움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 문제의식과 방법을 공유하고, 이를 토대로 공동의 커리큘럼을 구성해 봅니다. 이 커리큘럼은 오픈 스튜디오에서 실제로 실험되며, 다양한 참여자들과의 만남 속에서 조정되고 변형됩니다. 이후 오픈 아카이브 전시는 이러한 과정과 결과를 축적하는 장으로서, 커리큘럼, 연구, 실험의 기록을 통해 배움이 형성되는 조건을 드러냅니다. 이 일련의 과정은 완성된 결과를 제시하기보다, 배움이 생성되고 조직되는 과정을 가시화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한편, 이 프로젝트의 지향은 새로운 교육 모델이나 대안적 학교를 제안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또한 기존의 교육 구조를 개선하는 효율적 모델을 제시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오히려 배움과 앎의 본질에 집중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고, 그 과정 자체를 예술적 행위로 다루고자 합니다. 서로 다른 경험과 실천을 이어온 이들이 모일 때 어떠한 관계와 앎이 생성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어떻게 하나의 예술적이자 정치적인 실천으로 이어지는지를 살핍니다. 이때 정치성은 특정한 입장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조직하고, 공동체를 형성하며, 스스로를 구성하는 방식에서 발생합니다. 배움은 해방일 수도, 경계를 넘는 행위일 수도, 혹은 차이를 견디는 기술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정의를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배움의 실천들이 충돌하고 공명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입니다.

새로운 태양들 2026 《앎의 여정: 사랑, 흥, 유머 실천》은 이러한 조건을 실험하는 과정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펠로우 개인에게 자신의 실천을 다시 사유하고 재구성하는 비판적, 성찰적 장치로 작동하는 동시에, 공동체에는 집합적 사유와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을 형성합니다. 예술적 실천이 배움의 자리가 되고, 그리고 배움이 다시 세계를 재배치하는 실천으로 이어질 때, 우리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감각과 관계들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가능성, 또 다른 태양들을 감지하게 될 것입니다.

주최/공동 큐레이터: 최태윤
큐레이터: 박가희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김재아
프로젝트 매니저: 박선재
공간 디자이너: 김범준
그래픽/웹 디자이너: 김연우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창작산실]
문의: newsuns.kr@gmail.com